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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정령의 선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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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과 선비가 되기를 원하는 자들의 모임
by 대나무정령

'대나무정령'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08/07/01
    티스토리 분들께 아니 모든 국민께 제안합니다 (1)
  2. 2008/04/23
    중앙일보도 친일파의 손에 있는 건가? (1)
  3. 2008/04/23
    무료로 높은 질의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
  4. 2008/04/22
    김치
  5. 2008/04/22
    인삼
  6. 2008/04/22
    대나무
  7. 2008/04/22
    선비
  8. 2008/04/22
    불과 물
  9. 2008/04/22
    단지 마음에 의식을 하나 두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10. 2008/04/21
    선비의 소개와 우리의 역사

친미와 친일이라는 단어를 같이 쓰지 맙시다. 자세한 것은 우선 예전에 제가 썼던 글들 7개를 읽어보세요. 정말 중요한 내용이니까 반드시 끝까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한우와 미국소 둘 다 먹지 말자
보수화가 아니라 친일매국화
틀린 것을 다르다고 우기는게 민주주의가 아니다
한나라당은 도대체 왜 뭔가를 파지 못해서 안달인가?
빨갱이들에게 점령된 미국

공산주의 국가란 어떤 국가일까?
이념 전쟁은 없습니다

친미, 친일, 친북. 이 세 단어는 단어의 구조가 모두 같습니다. 처음에는 친일파가 오랜 세월에 걸쳐서 그렇게 작은 것까지 손을 써놓은 것인가 생각했지만 일제시대에 일본제국의 영향인것 같습니다. 그런데 명백히 이 친일이라는 것은 친북과 친미와는 완전히 다른 겁니다. 친미와 친일이라는 단어들을 같이 쓰면 그 개념이 확실하게 탑재되어있지 않은 분들은 그 둘을 동급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동급으로 의식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동급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친미는 나쁘지 않습니다. 매국이 나쁜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친미였고 김대중 대통령도 친미였습니다. 워싱턴 포스트가 썼듯이 그들의 개가 되기를 자청하느냐 당당한 동맹국으로서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며 협력을 하느냐만 다를 뿐이었습니다. 그런 게 바로 진정한 친미입니다. 따라서 친미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친미와 친일을 같이 써주면 친일파의 주가를 띄어주는 일이나 다름 없는 말의 마법이 탄생하는 겁니다. 이것은 예로부터 조중동과 연합뉴스를 비롯하여 한나라당 신문들이 해온 일입니다. 친북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은 우리나라이고 북한인들도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걱정해주고 위해주는 것이 친북인데 친미와 똑같습니다. 친일만이 단어의 구조는 같지만 완전히 다른 의미입니다. 따라서 친미와 친일을 같이 쓰시려면 친미와 친일매국이라고 쓰시던지 아니면 둘 중 하나만 써주세요. 이런 작은 것들이 큰 차이를 만듭니다. 조중동은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습니다. 명심 해주세요. 친미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미국과 러시아는 우리나라가 가장 사이가 좋아야 하는 나라들입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말입니다. 그런데 친일이랑 같이 붙이지 마세요. 매국하는 것이 나쁜거고 천박한 물질주의자가 되서 천박한 대통령을 뽑는 것이 나쁜 것이고 천박하게 긍지와 자존심과 정신을 버리는 것이 나쁜 거지 친미 그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분노를 참지 못하고 무엇인가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 생각 없이 친일이랑 같이 붙여서 부르면 친일의 본질을 가리는 것을 우리가 대신 해주는 꼴이 되는 겁니다.

같은 의미로 보수꼴통이라는 말도 버리세요. 우리의 적은 한나라당이지 진정한 보수파가 아닙니다. 저같은 중도파는 문국현 선생님이라면 충분히 만족합니다. 중도파가 중도파 지지하는것 아니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문국현 선생님 보수파로 이적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고 걱정해주는 민족주의자이십니다. 다른 나라의 전형적인 보수파처럼 이기주의적 민족주의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민족주의자이십니다. 그러니까 일단은 건강한 진정한 보수파가 되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족하는 겁니다. 친일파나 한나라당파만 아니면 됩니다. 진정한 보수파는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보수꼴통이라는 단어를 잘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든 욕을 하기 위해서 그들이 지어준 욕을 우리는 쓰고 있는데 한나라당처럼 문제의 본질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부러 외면하고 폭군들의 특기인 가짜 명분 만들기로 사탕을 사달라고 조르는 어린아이처럼 억지를 부리며 명분이 될 수 없는 명분임에도 힘으로 밀어붙여버리고 모든 것을 어둠에 묻어버리는 한나라당에게는 쓰면 안됩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무력을 사용하면 안되는 것처럼 보수꼴통이라는 말을 자주 쓰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언론 조작과 여론 조작으로 우리의 적이 한나라당이 아니라 보수 그 자체라고 날조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보수는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적은 '진정한 보수'가 아니라 한나라당이지만 한나라당은 그 사실을 언론 조작과 여론 조작으로 겉표면에 들어나지 않게 인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더구나 중도파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촛불을 좌파 빨갱이라고 몰아붙이기 위해서입니다. 중국이 티벳 문제는 전혀 거론하지 않으며 티벳은 독립시키지 않고 오히려 티벳인들에게 일부 한족이 다쳤다는 것만 중요하다는 듯이 반복재생하던 중국 공산당과 일본 제국과 조선총독부와 한나라당은 똑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꼴통이 아니라 한나라당파, 한나라당파꼴통, 친일매국파, 가짜보수파, 매국보수파, 반민족보수파 이 단어들을 써주시고 다른 분들에게도 그렇게 일러주세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런 작은 것들도 조심해야 본질은 외면하고 명분 만들기와 힘으로 밀어붙이기라는 폭군들이 즐겨쓰는 양대 산맥을 갖추고 있는 한나라당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daum이 '세무조사'를 당했으니까 한나라당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집, 주소, 이름 아마 왠만한 사람들의 것은 전부 알고 있을 겁니다. 중국을 흉내내서 만든 사이드카 제도로 알바들도 질적으로 양적으로 늘어나서 언론 조작과 여론 조작에 힘쓰고 있고요. 그런 거대한 세력과 싸우려면 뜨겁고 강철같은 의지와 담담함을 갖춰야 합니다. 냉정함이 아니라 담담함입니다. 우리의 이 뜨거운 마음은 절대로 꺼뜨리면 안됩니다. 그것을 유지하면서 모든 사물을 봐야 하는 겁니다. 숲과 나무를 함께 봅시다. 숲만 봐서는 안 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건투를 빕니다. 이번에 3세대 전대협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가 이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4세대, 5세대 전대협이 계속 나올 겁니다. 광주와 서울뿐만이 아니라 인천, 대구, 심지어는 경상도까지 말입니다. 이미 경상도에서는 깨인 분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 우리가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한나라당이 친일매국노 재산 환수법을 폐지하고 과거사 위원회를 없애버린다면 5년 후에 복구하면 됩니다. 다시 만들면 되요. 한나라당이 MBC를 민영화 하고 KBS와 MBC의 사장을 YTN을 비롯한 수십개의 다른 언론사들처럼 사장을 자기 마음대로 바꿔버린다면 5년 후에 정당한 사람들에게 정당한 자리를 돌려주면 됩니다. 의료보험을 민영화 하면 5년 후에 다시 국가에서 인수하면 됩니다. 아마 의료보험계를 꾀어차고 있을 한나라당파 사장은 꼴에 자기 것을 빼앗긴다고 한나라당의 30%에 해당한다는 친일파 위원들이 매국노 재산 회수법에 반응하는 것처럼 악착같이 자기거라고 우기겠지만 밟아주면 됩니다.

하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촛불이 성공하지 못하고 한나라당이 5년을 채운다면 5년 후에는 그들은 한국에서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겁니다. 사형 제도가 사실상 폐지된 우리지만 전두환과 비슷한 어쩌면 그 이상의 대가를 치뤄야 할 겁니다.

한나라당을 탄핵하지 못하더라도 성과는 많습니다. 국민의 의지가 하나로 모였습니다. 우리가 어떤 힘을 갖고 있고 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몸으로 깨우쳤습니다. 한나라당을 상대로는 총을 상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아무리 질이 떨어지는 정부라도 정상적이라면 이승만 대통령처럼 듣게 되어있습니다. 한나라당이 두번 다시 정권을 잡을 일은 없을테니 다음에 또 국민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한국인 모두가 각자 가슴에 담고 있는 촛불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에서 모두 모여서 하나의 태양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태양 안에서 담담하게 살아가는 삼족오처럼 자신의 마음 속의 촛불을 꺼트리지만 않으면 됩니다. 이제 국민은 자신의 가슴 속에 뭔가가 들어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정신이라는게 뭔지 마음이라는게 뭔지 깨달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타락하지 않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미국이 신자유주의에 가까우면서도 건강한 것은 기부문화가 정립이 잘 되었기 때문이거든요. 억지로 세금으로 가져가지 않아도 그들은 알아서 그만큼 직접 냅니다. 빌게이츠가 말했던가요? "이것이 건강한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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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G_Gatsby 2008/07/01 18:34 address edit/delete reply

    조중동의 진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것은 오히려 다행인것 같습니다. 기득권과 권력이 과거와 같은 방법으로 배를 채우려고 한다면 앞으로 갈등은 생각하기 조차 싫네요. 일목요연한글 잘 봤습니다.




뢰종님의 소년의 마음을 가진 아저씨를 위한 장난감 나라에서 그 기사를 읽고 아침소리님의 블로그에 가봤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면 엉터리 정보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 그런가? 과연!"이라며 세뇌되어 버릴 그런 만화더군요.

"역사는 한 국민이 공유하는 국민 정체성 자체이자 영광이기도 하지만
어느 나라나 국민들이 잊고 싶어 하는 상처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런 '역사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 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다."

일단은 맞는 말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곧 난징 대학살과 위안부 문제 등이 일본 역사의 '체면을 구기는' 불미스러운 상처라는 말이 나오는데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 또는 숫자가 뻥튀기 되었다, 또는 중국인으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또는 일본군에 가담했었던 조선인이 한 일이었다 이 네가지를 공공연히 말하면서 다니고 위안부 문제는 강제로 끌어갔다는 증거가 없다면서 자신들이 돈을 줬기 때문에 비도덕적이지만 합법적인 <창녀>라서 일말의 양심도 괴롭지 않다고 공공연히 말한다고 알고 있는데요. 저쪽에서는 불미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아무래도 일제 치하 36년간의 식민 지배 경험이 가장 큰 역사의 상처로 남아 있고"

또 맞는 말이 나옵니다. 아무래도 가장 근대에 있었던 일이라 이게 가장 정신적인 데미지가 크지요. 바로 우리 조부님들의 세대에 있었던 일이니까요. 상당히 오래된 일로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나라를 빼앗긴 후로 아직 100년도 되지 않았지요. 이제 문제의 말이 나옵니다. "이 상처는 아직도 제대로 아물지 않았다. 아니 아물 수가 없었다. 그동안 정말 지겹게도 아픈 데를 후벼파는 이들 때문이다."

그리고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그림과 함께 세 항목이 나오는데 "과거사 캐기"와 "친일 분자 색출 응징"과 "대한민국 정체성 흔들기"입니다. 대한민국 정체성 흔들기?

?

어째서 그게 대한민국 정체성 흔들기와 연결되는지 알 수 없고 어째서 그 상처가 우리의 상처가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독립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부 다 친일파"라는 개도 콧방귀도 뀌지 않을 억지를 써봤자 들을 사람도 없고. 어째서 친일파를 처단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상처가 되는지 그리고 어째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흔들리는지 알 수 없습니다. 흔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프랑스는 이런 일을 확실하게 처리했지만 프랑스의 존엄성과 정체성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대한민국이 거기에 들어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며 일본 콤플렉스를 벗어던질 때도 되었다고 하는데 일본에 콤플렉스 같은 것을 갖고 있는 한국인이 몇이나 됩니까? 많은 분야에서 일본이 앞서있기는 합니다만 그런 걸로 누가 컴플렉스를 느낍니까? 그런 세상이라면 이 세상은 단 한 명의 1등과 무수히 많은 컴플렉스 덩어리들로 이루어져 있나보군요. 어째서 컴플렉스라는 말이 나오는지 쓴 본인은 정말로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새 시대가 열렸다는 말로 끝나는데 이번에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이 생각나서 입맛이 쓰더군요.

중앙일보에서는 이런 기사도 내보냈었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5&aid=0001950191

일제시대에 소설문학이 얼마나 풍성하게 발달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문화가 죽어간 시기를 자기 취향에 맞는 다양한 소재의 문학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해서 문화가 풍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보기 싫더군요.

“한국이 외국을 인식해온 방식이 학문적으로 궁금했어요. 한국에서 살면서 보니 민족주의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연구를 해봤더니 개화기 이전 한국에선 국경선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와 외국을 구분하는 식의 인식은 없더군요. 대신 ‘우리와 같은 문화권이 아니면 오랑캐’라는 식이더라고요. 지금 한국에선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을 쓰고 있는데, 정치적인 이유에서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어요.”

어째서 일본이나 타국에서는 민족주의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지 않나라는 말이 거의 안 나오는 건지 궁금하고 유독 한국에서만 이러는지 궁금합니다. 아니면 중앙일보가 이런 사람을 찾아다니는 건가요. 거의 1500년 전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했을 때 유민들이 고국을 재건하려고 일어났습니다. 영국이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잔 다르크가 있었습니다. 인도가 영국에게 합병당했을 때 무하마트 간디가 가장 위대하고 이상적인 시위방법이라고 칭송받는 비폭력 침묵 시위로 대항했습니다. 로마제국이 카르타코를 침범했을 때 카르타코는 맞서 싸웠습니다. 이런 예들을 두고 민족주의가 무슨 가공된 산물인냥 말하는 것은 정말 이상합니다. "민족의 가장 작은 단위는 가족"이라는 말도 있듯이 민족을 위하고 민족을 위해 노력하고 이런 것들을 이상하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 이상합니다.

그리고 예전에 '우리와 같은 문화권이 아니면 오랑캐'라는 사상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그것을 우리나라와 외국을 구분하는 인식의 대용이라고 하는 것은 틀렸습니다. 개화기 이전 한국에선 아니 아시아에서는 국경을 서양처럼 명확히 국경선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드리뭉실했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청나라와 조선을 구분 안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까요? 일본인과 한국인을 구분 안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단일민족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었다는 이유로 국경선이 드리뭉실했었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와 외국을 구분하는 방식이 '우리와 같은 문화권이 아니면 오랑캐'라는 주장은 엉터리이고 정치적인 이유에서 나온 개념도 아니지요. 중국에는 60개에 가까운 소수민족들이 있는데 각 민족은 자기가 그 민족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60개의 단일민족이 있는 거지요. 다민족을 지향해야 한다는 말은 이상합니다. 대충 다민족 국가라고 한다면 미국, 캐나다 그리고 호주가 떠오릅니다. 그런 환경이 좋으면 자기가 그런 데로 가야지 멋대로 한국에 와가지고는 감 놔라 대추 나롸 하는 것은 정말 심하게 말 해서 싸데기 한 대 쳐주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우리를 도대체 뭘로 보는 건지. 박노자라는 사람도 그렇던데 자기가 한국에 왔으면 정말 우리 민족에 섞여들어올 생각을 해야지 자기는 자기 민족에 남아있겠다는 욕심이 있으면 시민권은 포기하고 한국인이라고 불릴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요. 중앙일보가 이번에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민족주의는 헛된 거다 정치적인 거다'라는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은 평소에 사랑이라던가 우정을 느껴본 적이 없는걸까요 아니면 자신조차도 믿지 않으면서 위에서 까라길래 깐 걸까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7&aid=0000004959

참고로 이 기사를 보면 일본인들도 스스로를 단일민족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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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용천미리내 2008/04/23 17:33 address edit/delete reply

    중알일보는 친일파 자손의 것입니다. 사주의 아버지 홍진기는 조선 통독부 관료였으며 이승만 정권에서 발포명령을 내렸던 자입니다.




꽤 오래 전에 MIT·예일·스탠퍼드 등 미국 명문대학들을 중심으로 무료 교육 강습 웨이브가 생겨났습니다. 대부분의 강습들은 영어를 할 줄 아셔야 쓸 수 있지만 한국 대학에서도 참여하고 있으니 영어에 불편하지 않을만큼 능숙하시면 자신이 흥미가 있는 분야를 골라서 학점이나 의무에 억매이지 않고 즐기면서 하고싶은만큼 필요한만큼 공부할 수 있습니다. 아직 아는 분도 그리 많지 않고 유용하게 쓰시는 분들도 적은 듯 합니다.

가장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MIT의 무료강습실
http://ocw.mit.edu/OcwWeb/web/home/home/index.htm

한국대
http://ocw.korea.edu/

경희대
http://ocw.khu.ac.kr:8080/CTL/

도쿄 대학
http://ocw.u-tokyo.ac.jp/english/course-list/index.html

와세다 대학
http://www.waseda.jp/ocw/index_e.html

워싱턴 대학
http://www.extension.washington.edu/openuw/

프린스턴 대학
http://www.princeton.edu/WebMedia/lectures/

펜실비니아 대학의 E-Book 모음
http://www.library.upenn.edu/eresources/ebooks.html

1960년에 만들어진 대학에 진학할 기회가 없었던 일반인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영국 단체
http://www.open.ac.uk/openlearn/home.php

인도 정부의 국민 프로그램 엔지니어링 관련 과목만
http://www.nptel.iitm.ac.in/

스탠포드 대학 컴퓨터 관련 과목만
http://cslibrary.stanford.edu/

카네기 멜런 대학
https://oli.web.cmu.edu/jcourse/webui/free.do

텍사스 대학
http://web.austin.utexas.edu/wlh/browse.cfm

버클리 대학
http://webcast.berkeley.edu/courses.php

예일 대학
http://open.yale.edu/courses/courses.html

노틀담 대학
http://ocw.nd.edu/courselist

스탠포드 대학 (i-tune)
http://itunes.stanford.edu/

교과서 혁명
http://www.textbookrevolution.org/

구텐벌그 프로젝트
http://www.gutenberg.org/wiki/Main_Page

무료 교과서 수학 관련만
http://users.ictp.it/~stefanov/mylist.html

위키북
http://en.wikibooks.org/wiki/Main_Page

런 아웃 라우드
http://www.learnoutloud.com/Free-Audio-Video

오디오 북
http://www.audiobooksforfree.com/screen_main.asp

리브리복스 (책을 읽어주는 mp3파일도 있어서 무료로 영어 공부 하기에 무척 좋은 사이트. 동화책 같은 것들도 다양.)
http://librivox.org/newcat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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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의 상징이라고 하면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김치입니다. 아무리 이런 쪽에 무관심한 한국인이라도 김치가 우리의 상징 중 하나라는 것은 의식하고 있고 의식함에 따라 우리의 상징이 되는 겁니다.

김치의 시작은 소금에 절인 야채였습니다. 이 기법은 문헌상으로는 3천여년 전 중국에 있었던 ‘저'(菹)라는 요리와 비슷한데 우리는 고구려 때부터 먹기 시작했습니다. 고구려는 겨울이 길기 때문에 채소를 썩지 않게 보관하기 위해서 먹기 시작했는데 이때는 무, 오이, 가지, 부추, 죽순, 마늘 등을 소금으로 절였고 때로는 술이나 술지게미도 넣었다고 합니다. 무를 절여서 단무지를 만들었던 고구려의 택암 스님을 생각해보면 보편화되지는 않았었겠지만 때로는 식초 등 여러가지 다른 방법을 이용하기도 했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조선중기에 고추를 반입하면서 대부분의 종류의 김치들은 고추를 쓰게 됩니다. 이때부터는 젓갈류를 본격적으로 김치 양념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부유층에서는 조기젓, 육젓 등 비교적 비싼 재료를 사용했고 민간에서는 주로 멸치젓이나 새우젓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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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또다른 상징으로는 인삼이 있지요. 우리 한국인들 스스로가 의식하고 있지 않은데 상징이라고 불러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라도 인식하기 시작하세요. 문화는 스스로가 인식하고 의식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게 됩니다.

고려인삼에 대해서 아시나요? 언제부터 우리가 인삼을 재배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고려시대 크게는 고구려 때부터 재배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지금 고려인삼이 서식하는 곳은 우리나라와 중국 만주 그리고 러시아의 연해주인데 전부 고구려의 영토였던 곳이거나 그에 가까운 곳입니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고려가 만들어지며 유민들이 종을 갖고 왔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고려인삼이 재배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뿐이라고 하는군요.

한국 인삼이 서양에 처음 소개된 것은 1610년에 네덜란드 상인과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통해서입니다. 특히 산삼이 유명해졌었는데 프랑스 선교자 자르투는 1711년 한국의 산삼을 그림으로 묘사하기도 했고 벨기에인 고셍은 1902년에 발간한 <조선>에 한국 인삼이 진귀한 특산물로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에까지 진상될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효능은 피로를 풀어주고 스트레소를 해소시키며 혈압과 혈당을 낮추고 노화를 방지하고 성기능 회복에다가 피부 질환에 좋고 알코올 중독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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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는 추위에도 결코 꺾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로는 대나무가 따뜻하기 때문이랍니다. 강하기만 할 뿐만이 아니라 따스함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눈보라 속에서도 원래 모양 그대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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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을 대표할 수 있는 것에는 뭐가 있을까요. 한국인 하면 떠오르고 한국인의 상징으로 여겨질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선비입니다.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이자 한국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문화란 스스로를 의식함입니다. 선비란 존재가 있는데도 일부의 사람들이 선비란 존재에 대해서 잘 의식하지 않는 것은 평소에 의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의 문화를 잘 의식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현대사회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정말 관심 있어하는 사람들도 주변에게서 의식하게 됨을 배우지 못하고 뭘 어떤 것을 의식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한국의 상징에 대해서 서술할 것을 요구받으면 아마 요리로서 김치, 노래로서는 아리랑, 건축물로서는 온돌을 대는 것으로 끝이겠지요 왜냐하면 평소에 의식해온 것이 그것들뿐이니까요.

선비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최초의 선비는 삼국시대에 존재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구려 시대에 6대왕 태조시대에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간략하게 태조왕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그는 쿠데타를 일으켜서 고구려의 왕권을 잡은 인물입니다. 추몽께서 고구려를 세우신 후 5대 모본왕까지 그 피가 이어졌으나 그 후에 태조왕께서 쿠테타를 일으켜서 국조왕이 되셨지요. 최초의 선비는 그때 생겨났습니다.

선비란 지혜와 힘을 갖춘 존재입니다. 그 당시에는 선배제도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선배제도는 문무겸전의 인재들을 양성하며 그들이 유년의 어린 나이에서부터 신체발달에 부응하는 매우 정교한 지적, 정서적, 신체적 훈련과 교양을 통해 보다 완벽한 심신의 능력을 갖게 되는 하는 제도입니다. 이들은 조의선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이두문으로 선배 또는 선비라고 발음됩니다. 그러니까 뜻을 풀이하자면 검은 옷의 선비가 됩니다. 의외로 로맨틱하지 않나요? 이들은 누구보다도 사물과 현상을 깊게 인식하고 문제의 실상과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며 이를 해결할 심리적, 물질적 능력을 갖도록 훈련됩니다.

원래 선비는 사냥이나 노래와 춤 그리고 무예 등 여러가지 경기에 의해서 선발되었는데 고려무렵부터는 선비의 자격은 국가나 남이 아닌 자신 스스로가 정하게 되었습니다. 고구려 때는 경당이라는 곳이 있어 아이들이 책을 읽고 공부하며 활쏘기를 익힐 수가 있었고 고려 때까지 이 풍습은 유지되었으며 마침내 조선 시대에는 좀 더 본격적으로 서당이라는 곳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학교란 것이 생겨났지만 선비라는 2천년에 가깝게 유지되어온 우리의 풍습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 선비관은 그 흐름을 뒤바꾸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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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물을 함께 갖춰라. 이 말은 여기저기에서 많이 들었을 겁니다. 불의 기운은 우리의 열정 같이 폭발적인 힘을 뜻한다고 보시면 되고 물의 기운은 냉철함 또는 담담함입니다. 선비는 담담해야 합니다. 냉철한 것이 아니라 담담함입니다. 냉철하다는 것은 마음을 인위적으로 차게 얼리는 것으로 담담함과 비슷하지만 스스로를 얼려버림으로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게 됩니다.

선비가 가져야 할 것은 불과 물로 열정과 담담함입니다. 물은 불을 꺼버리기 위함이 아니라 제어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단순히 역학적으로 물이 불을 이기기 때문에 물을 더 높게 치고 불을 하등하다고 여기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불이란 우리의 생명력으로 우리의 영혼 그 자체입니다. 결코 억누를 것도 아니고 얼려버릴 것도 아닙니다. 물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바로 이 불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어하기 위한 담담함이 필요한 것이지요. 물은 불을 억누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향을 잡아주고 제어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뭐든지 날려버릴 것 같은 폭풍과도 같은 폭발력의 불과 담담함의 물이 우리가 선비로서 가져야 할 힘입니다. 자신 속에 있는 불을 소중히 하세요. 결코 꺼뜨리지 말고 조심스럽게 키워나가세요. 그것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그리고 담담함으로 불을 제어하세요. 흔들려도 부러지지는 않는 담담함을 소중하게 여기세요. 결코 냉철함이 아닙니다. 물은 불을 꺼뜨리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제어하는 것입니다. 둘은 결코 양립하는 마음상태가 아닙니다. 자기 속에 있는 불을 소중하게 키워가시고 자기 속에 있는 물을 소중하게 키워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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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선비입니다. 옛날 영웅들만큼 그리 우수한 선비는 아닙니다만 여기에서 저는 저의 철학을 구체화시키고 다듬어가며 보다 작은 선비가 될 겁니다. 저는 완벽한 가장 이상적인 영웅 선비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선비관의 다른분들에게 완벽한 선비가 되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되면 좋겠지요.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완벽한 선비는 어떤 존재인가 마음에만 담아두고 소박하고 작은 선비의 모습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다고 완벽한 선비의 모습을 결코 저버리지는 마세요. 단지 마음에 두고만 있는 것도 단지 의식만 하는 것으로도 많은 것이 변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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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한국인을 대표할 수 있는 것에는 뭐가 있을까요. 한국인 하면 떠오르고 한국인의 상징으로 여겨질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선비입니다.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이자 한국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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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최초의 선비는 삼국시대에 존재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구려 시대에 6대왕 태조시대에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간략하게 태조왕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그는 쿠데타를 일으켜서 고구려의 왕권을 잡은 인물입니다. 추몽께서 고구려를 세우신 후 5대 모본왕까지 그 피가 이어졌으나 그 후에 태조왕께서 쿠테타를 일으켜서 국조왕이 되셨지요. 최초의 선비는 그때 생겨났습니다.

선비란 지혜와 힘을 갖춘 존재입니다. 그 당시에는 선배제도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선배제도는 문무겸전의 인재들을 양성하며 그들이 유년의 어린 나이에서부터 신체발달에 부응하는 매우 정교한 지적, 정서적, 신체적 훈련과 교양을 통해 보다 완벽한 심신의 능력을 갖게 되는 하는 제도입니다. 이들은 조의선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이두문으로 선배 또는 선비라고 발음됩니다. 그러니까 뜻을 풀이하자면 검은 옷의 선비가 됩니다. 의외로 로맨틱하지 않나요? 이들은 누구보다도 사물과 현상을 깊게 인식하고 문제의 실상과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며 이를 해결할 심리적, 물질적 능력을 갖도록 훈련됩니다.

고구려 시대에 선비들의 대표적인 활약으로서는 안시성 전투가 있습니다. 당태종이 요동의 여러 성들을 함락시킨 후 많은 공성기구들로 안시성을 공격했었지만 조상님들은 이것을 훌륭하게 막아내었습니다. 그러자 당태종은 60일동안 50만명을 동원하여 성의 동남쪽에 높은 토산을 쌓게 했는데 이때 토산이 무너지며 성벽의 일부를 붕괴시켰습니다. 이때 고구려군 결사대가 일제히 돌격하여 당나라군을 물리치고 토산을 점령하고 주변을 깎아 나무를 깎고 불을 놓고 지키니 얼씬도 못했습니다. 기록은 '이때 성안에서 검은 옷을 입은 백 명의 용사가 튀어나와 천장의 거미줄을 걷어내듯 당나라 2만 기병을 산 아래로 팽개치고는 오히려 토산을 차지해 버렸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 검은 옷의 용사들을 조의선인이라고 부릅니다. 당시에 고구려의 조의선인은 무려 3만여 명에 달했고 그 수장은 연개소문이었다고 합니다.

선비는 사냥이나 노래와 춤 그리고 무예 등 여러가지 경기에 의해서 선발되는데 그 방법으로 대표적인 종목들은 씨름, 검무, 수박, 깨금질, 택견, 물싸움, 노래, 춤, 사냥 등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것들은 아직도 전승되고 있지만 수박만은 실전되었고 대신 수박의 변질된 형태인 수벽치기가 아직 전승되고 있지요. 선비가 된 사람들은 모든 곤란과 괴로움을 이겨내고 고사(故事)를 강론하거나 학예를 익히고 산수를 탐험하고 성곽을 쌓고 길을 닦고 군중을 위해 강습을 하게됩니다. 선비들은 자기들 중 가장 선행과 학문과 기술이 뛰어난 자를 뽑아서 스승으로 섬기는데 이 스승은 신크마리라고 불리우며 마리는 대형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신크마리가 선비들을 모아 스스로 단체를 조직하여 싸움에 참가하게 됩니다. 당시 고구려에는 골품제가 있어서 출신배경이 좋지 못한 사람들은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하였지만 선비의 단체는 귀천이 없이 학문과 기술로 자신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668년에 고구려는 멸망하게 됩니다. 신라와 함께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는 일부의 왕족.고관.장수들을 포함하여 1만 3천여명의 백제인들과 20만여명의 (3만 8천 200호인데 한 호당 5~6으로 계산) 고구려인들을 포로로 끌고갔습니다. 이 당시 고구려의 인구수는 69만 7천호 백제의 인구는 76만호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호는 가족을 뜻합니다. 고구려가 훨씬 더 큰데 어째서 그렇게 인구가 적었느냐하면 그 당시 고구려는 수많은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고구려 포로가 더 많은 이유는 고구려의 땅을 더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고요. 그런데 이때 고구려의 한 가족당 인구수를 5명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수십년간 전쟁을 치뤄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지요. 한 호당 인구수를 3.3명으로 계산하면 멸망 당시 고구려의 인구수는 3만 8천 200호니까 230만 명 정도가 됩니다.

당나라로 끌려간 고구려인들은 중국 오지를 방황하며 당나라군과 싸우기도 하고 옛 고구려 땅을 찾아 떠나기도 했으며 여진족, 거란 등의 이민족들에 들어가기도 했는데 그 중 이정기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의 중심부에 나라를 세워 손자대에 이르기까지 58년간이나 버텼다고 합니다. 최초에는 고구려 유민들로 만들어진 2만명의 군대밖에 없었지만 10여만의 당나라군을 격파할 정도로 용맹했었습니다. 이 당시 많은 유민들이 계속 신라와 동부만주 그리고 돌궐로 이주해가서 요동에는 고
구려 유민이 거의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구당서에 의하면 5718호 (1만8156명)이 남아 있었다고 하는군요. 이 돌궐은 지금의 터키입니다.

670년 4월에는 보장왕의 외손 안승과 검모잠 등이 칼을 들고 일어났고 뒤를 이어 당나라의 영주부근에 강제로 이주되어 있던 유민집단은 696년 당나라가 거란족의 반란에 혼란스러워 할 때 일부 말갈족 집단과 함께 동으로 탈주하여 동부만주에 국가를 건설하여 당나라는 고구려가 멸망되었는데도 고구려의 영토를 제대로 지배해보지도 못한 채 자신들의 나라로 쫓겨갔습니다. 또한 만주지역에 흩어져 있던 고구려유민들은 급속히 그 아래에서 뭉쳤는데 이것이 발해가 됩니다. 요동에 남아 있던 소수의 고구려유민은 안녹산의 난 이후 일시 소고구려국을 세워 자립하였으나, 곧 이어 9세기 전반 발해에 병합됩니다. 최초에 발해의 인구는 단 10여만호의 시민들과 정예군 수만 명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점차 그 세력을 불려 전성기에는 대략 300여만명까지 많아졌습니다. 이 발해는 고구려 유민들이 고구려에게 충성하던 속말갈족에게 합류하면서 세워진 건데 신당서에 의하면 고구려 유민의 수가 말갈족의 20배가 넘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발해는 말갈화 된 고구려 유민들과 후에 모여들은 고구려 유민들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나라입니다.

그와 동시에 신라화된 고구려인들도 있었는데 901년에 후고구려를 건국했고 태조 왕건이 반란을 일으켜서 918년 고려가 만들어지고 거의 25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단절되어온 선비는 되살아납니다. 고구려의 유민들은 고려의 이름 아래에서 뭉치게 되는데 나중에는 발해인들까지 고려로 오게 됩니다. 발해계 고구려인의 고려 합류는 200년을 넘는 오랜 세월동안 공식적으로는 크게는 4번에 걸쳐서 이루어졌습니다. 첫번째로는 발해가 멸망하기 전에 장국 신덕 등 발해의 장군 500명이 부하들과 함께 귀화했고 같은 해에 모두간 등이 백성 1000호와 함께 귀화했으며 두번째는 발해가 멸망한 후 태조 10년부터 12년까지 발해의 망국민들이 다수 고려에 합류하였습니다. 세번째로는 발해가 멸망한 후 후발해가 건국되었는데 이게 정안국으로 바뀌면서 대규모의 발해인들이 고려로 합류하였고 후발해는 중국 5대 왕조와 통교하다가 정권이 열씨(列氏)에게 넘어가게 되자 세자 대광현이 수만 명의 백성을 거느리고 합류하였습니다. 네번째로는 거란 제국의 극성기에 흥요국의 발해 재건 운동이 실패하면서 또다시 발해인들의 고려 합류가 있었습니다. 발해 왕실의 후손인 대연림은 흥요국을 일으킨 후 고려에 원병을 요청하여 거란에 대항하였으나 1년만에 붕괴했답니다. 남은 자들은 뿔뿔이 흩어지며 북방 이민족들과 몽골, 일본 등에 합류하였습니다. 간혹 발해를 우리나라 역사로 넣어야 하는지 마는지 곤란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대조영이 순수 고구려인이었는지 고구려계 말갈인이었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선 양쪽 다 고구려인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다가 발해가 우리 역사인 이유는 우리가 발해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며 고구려와 고려의 후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크게 보면